신병곤 개인전 <도시 3 부작 : 해체와 내부> 전시 평론
해체되는 도시, 연결에의 의지
문유진 큐레이터
서울처럼 집약적으로 근대적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해 온 거대한 현대 도시의 도시성(urbanism)은 단일한 성질을 통해 이해하거나 표상해 내기 어렵다. 파괴와 건설, 파편화와 집중이 여러 층위에서 반복되는 서울에서 도시성은 총체적인 실체로서가 아니라 도시를 구성하는 수많은 구조와 제도들, 물적 토대와 프로그램, 그리고 그와 맞물려 돌아가는 도시민들의 생활양식을 통해 다면적으로 파악된다. 그러니까 도시성이라고 하는 것은 도시를 구축하는 다양한 개체들의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지각 공간들이 중첩되고 단절되며 생성하는 도시에 대한 주관적 해석들이 산재하는 상태에 가깝다.
⟪도시 3부작 Urban Trilogy⟫은 이 같은 ‘상태적’ 도시성에 대한 사진가 신병곤의 장기 연구 프로젝트로, 2015년부터 사진과 디지털 편집 작업을 통해 작가가 그려온 지극히 주관적이면서 극도로 분석적인 도시 설계도이다. 탈영역우정국 1층에서 같은 제목으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4년에 걸쳐 몰두해 온 연작 <도시미분법 Urban Differentiation>, <도시천문학 Urban Astronomy>, <도시통신학 Urban Telematics>을 동적으로 구성해 소개하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선 관객들은 우선 의외의 풍경에 놀라게 된다. 사진가의 개인전에서 으레 만날 법한 액자 속 디지털프린트 대신, 동세와 변주를 공통분모로 하는 이미지들이 공간을 입체적으로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달라지는 이미지들, 관객에게 말을 걸 듯이 다가오다 이내 멀어지는 영상을 비롯해, 개별 작품들이 전통적 사진 매체의 특징과 기능을 가장 효율적으로 삭제하는 형식을 취하는 동안, ‘3부작’은 열린 공간 속에서 각 이미지 사이의 연속성과 관계를 드러낸다. 이를 위해 각각의 작품들은 서로 대화하듯 치밀하게 배치되었고, 그에 조응하여 관람 동선은 작가의 탐구 일지를 읽으며 작가가 던지는 질문을 따라가도록 설계되었다. 그 결과, 관객은 확대된 개별 장면들 속에 새겨진 흐름과 벡터(vector)를 질문하고 유추하며 전시를 관계의 연속체로서 감상하게 된다. 말하자면 이번 전시는 ⟪도시 3부작⟫의 전과 후, 전시장의 안과 밖으로 연결되는 어떤 흐름 중의 어느 한 지점이다. 즉, 도시 속에 산재한 구조적이고 예술적인 도형들을 포착하고 재조합한 풍경들의 집대성인 동시에 새로운 설계도의 예고편인 셈이다.
전시를 여는 작품은 <도시미분법>(2015~2017)이다. <미분법>은 도시를 구성하는 인수들 가운데 가장 몰개성적이고 비서사적인 건물 표면의 형식 요소들을 분해하고 재조합한 작업이다.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줌 인’된 건물의 면면들은 비슷하지만 각기 다른 특성 값을 지니고 있는 극소 단위들로 이루어진다. 이들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단순한 패턴인 듯 보이지만 실은 미묘하게 다른 형, 색, 길이, 기울기 등을 갖고 있으며, 단위별 크기와 모양, 비율 등은 조금씩 변화하며 인접한 다른 극소 단위들과 연결되거나 끊기면서 새로운 단위를 구성하거나, 이질적 그리드와 만나 극적인 변화를 만들어 낸다. 이 ‘건축 사진’ 시리즈에서 도시성은 일상이나 역사는 지각되지 않고, 도시의 ‘무한점’들이 연결되고 끊어지며 연속되는 임의적 체제로서 드러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쌍을 이루는 두 개의 이미지를 하나의 평면에 동시에 드러내기 위해 <미분법>에 렌티큘러(Lenticular) 인쇄를 적용했다. 렌티큘러 패널에서는 잘게 쪼개어진 플라스틱 볼록렌즈를 통해 두 개의 서로 다른 이미지가 각도에 따라 전환되어 보이는데, 12점의 <미분법> 이미지를 여섯 개의 렌티큘러 패널에 설치함으로써, 관객이 걸음을 옮기며 서사나 기호가 아닌 온전히 자신의 감각에 의지하여 도시의 파편들을 인식하도록 제안하는 것이다.
<도시천문학>(2015~2018)에서 작가는 본격적으로 가상의 풍경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삼각대 없이 망원 렌즈로 촬영해 빛만 남긴 수백여 장의 서울 야경 이미지는 곧 디지털 공간에서 조적재로 변환된다. 수백여 초의 순간과 그 순간 실재하던 구조물들은 픽셀로 이루어진 비물질 이미지가 되고, 또 다시 수백여 번의 배열, 중첩, 분산을 통해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점점이 가상의 도시를 구축하게 된다. 이 만화경적인 ‘우주 사진’ 연작에서 도시성은 어둠 속에서 어렴풋이 떠오르는 빛의 파편들이 표상한다. 이 가상의 구조물들은 여러 시공을 거쳐 우리 앞에 나타난 현존에 가까운 상태(quasi-présence)로서, 우리는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의 순간들이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영상으로 표현된 <천문학>은 어둠 속 빛을 ‘들여다보는’ 행위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해준다. 우주 속 풍경처럼, 멀리 보이던 빛의 점들은 점점 다가와 건물의 형체가 나타나는 듯 하다가 이내 화면을 빛으로 덮어버린다. 줌인된 원경은 예상하지 못한 작은 장면들을 우리의 눈앞으로 (어쩌면 다소 폭력적으로) 끌어다 놓는다.
<도시통신학 Urban Telematics>(2015~2019)은 일견 도시성에 대한 작가의 가장 회의적인 해석을 보여주는 듯하다. 상하좌우로 대칭을 이루는 이미지는 자기복제를 통해 증식하는 건축물과 도시를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한편, 그 위를 가로지르는 각기 다른 각도의 실선들은 섬세하고 취약한 ‘현실’을 표상한다. 3부작 가운데 실재하는 풍경과 가장 거리가 먼 이 도시 이미지들은 통신 네트워크의 복잡한 구조를 은유하며 가상과 복제로 구축된 세계에서 독창성의 의미를 질문한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가장 차가워 보이는 이 미래의 도시 설계도는 어쩌면 도시성에 대한 작가의 낙관적인 전망을 드러낸다. 작가가 설정한 고유의 공학적 규칙에 의해 생성된 선들은 동어 반복으로 구성된 여러 이미지들 위에 각기 다른 양태로 복제되고 배열된다. 작가는 ‘오리지널리티’를 상징하는 기호로서 이 선들을 설계도에 심어 둠으로써, 연약하되 소멸되지 않는 어떤 존재를 드러내 보인다. 그 존재는, 피에르 레비의 ‘가상화(virtualisation)’ 개념을 빌어 설명하자면, 통신 네트워크, 즉 확장과 관계의 망을 통해 “창의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문제를 거듭 상상해 내는” 가상적 에너지로서의 (또는 현재 실행되고 있지 않는 힘의 상태로 존재하는) 도시성을 암시한다(P. Lévy, 1998). 작가는 <통신학>을 높이 1미터가 넘는 크기의 라이트패널 위에 설치했는데, 이로써 우리는 복제를 거듭한 이미지의 가상적 표면 아래 숨어있는 원본 세계의 디테일을 더욱 선명히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도시 3부작⟫은 하나의 프로세싱(processing)이다. 현재, 과거, 미래의 도시성을 사진 이미지에서 추출해 낸 면, 점, 선, 그리고 색이라는 형식 요소들을 통해 재구성해 보이지만, 전시에서 드러나는 것은 작업 결과물로서의 시각 이미지 생산물이 아니라, 도시를 이해하는 방편으로 작가가 개발한 이미지 생성 및 처리 과정, 그리고 그것의 작동 원리에 가깝다. 작가는 도시성을 포착하는 것이 아니라 운용한다. 따라서 ⟪도시 3부작⟫은 정태(靜態)적이지 않으며, 여러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는 가능의 힘을 표출한다. 더불어, 도시의 추상적 이미지들을 분할하고, 재조합하고, 복제하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접합과 중첩의 방법론은 3부작의 기저에 짙게 깔린 연결에의 의지를 노출시킨다. 어쩌면 작가는 도시를 구성하는 개체들에게 메시지를 전송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획일적 지각을 강요하는 도시의 ‘지금, 여기’로부터 벗어나 “정체성의 변화(mutation d’identité)”를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하고 자유로운 시공(時空)에 이르기 위해서는, 결국 단절이 아닌 연결이 필요하다고. [글/문유진]